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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 TV를 보면서 잘 운다 2003/05/01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프로그램에서 안타깝고 마음 아픈 장면이 나오면 여지없이 훌쩍거리고,
느낌표의 아시아 아시아를 보면 대성통곡을 한다.

오늘은 밭 한가운데 장롱 속에서 지내는 기이한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보다가 울었다.
장롱 속에 사람이 산다는 호기심으로 접근해보니, 갓쓰고 한복을 입은 조선시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할아버지가 장롱 속에서 나온 거라.
낮에 다시 찾아가 보니 장롱 두개를 길게 이어서 문짝에 초인종도 있고, 자기가 쓴 글씨들을 붙여둔 장롱 안에서 할아버지가 지내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정말 아이 같은 그 할아버지는 낮에는 밭을 갈고, 피로하면 장롱 안에서 낮잠도 자고, 열어둔 장롱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한가롭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잠에 빠지더라.

근데 그 할아버지가 마실을 간다며 찾아간 곳은 자식들이 살고 있는 번듯한 주택.
1층은 양옥, 2층은 한옥으로 잘 지은 그 집이 원래 할아버지 집인데.. 할아버지가 장롱에서 지내게 된 이유는 이렇다.

사이좋던 노부부 중에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는 몸져 누웠다.
보다못한 자식들이 할머니 물건을 다 없애버리면 덜 생각이 날까 싶어 할머니의 것은 모조리 버렸다.
그러다 어느날 꿈에 어느 산 아래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 장소로 달려가니 그 곳에 할머니가 쓰던 장롱이 버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울면서 장롱을 쓰다듬으며 할머니 생각을 했고, 그 장롱곁을 떠나지 못하고 종일 그곳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훈장, 이장도 하고 지역 고문으로도 지냈다는 그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가지 말라고 해도. 내 마음은 내가 정하고, 네 마음은 네가 정하는 거야 라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장롱이 있는 곳으로 간다.

장롱 안에 붙여 둔 할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아직도 모습이 훤하다며 참 보고 싶다고 말하는 할아버지를 보니 둘의 각별한 마음이 느껴지고, 또 우리 외할아버지도 생각이 나서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평생 퍼주는 사랑만 베풀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중에 해줄게

Comments (2)

dakini:

화진아, 안녕? 가영이야.
어찌하다 흘러흘러 놀러온 모양이다.
전에 타임머신인가? 할머니 기일에 1년만에 돌아가신 금슬좋은 할아버지 얘기를 보고 짠했었는데.. 사랑하며 늙어가는 부부가 있다는 것 당연한 일이면 좋을 텐데 이다지 짠한 일이라니..
맘 아프고 슬픈 일만 있는 이야기 보다 그래도 나보다 더 사랑하며 사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많이 난다. 오래 따뜻하게 사랑하는 마음도 사람이 갖고 나는 재능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이 잠시 든다.

lunatree:

네. 맞아요.
저 또한 사랑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랍니다.
그리고 사랑을 잘 할 줄 아는 것은 복이기도 한 것 같고.
친구 하나는 자신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연애를 반복하다, 지금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고민하며 '사랑을 더 잘하기 위한' 연구 중에 있대요.
근데 어쩌면 덜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생기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하네요. 그럼 그 친구가 '연애를 더 잘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고 해야 맞을라나..
사랑하는 것과 연애는 다른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