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블로그글 복원'에 해당되는 글 45건

  1. 횡단보도에서 버스까지 2003/06/30
  2. 라디오가 있었지 2003/06/26
  3. 심슨의 발모제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2003/06/12
  4. 젊은 인생, 빚지고 살지 말자 2003/06/12
  5. 아담을 기다리며 2003/06/06
  6. 이도공간 2003/06/06
  7. 다이빙을 배우고 있어요 2003/05/30
  8. 꼬마들 2003/05/24
  9.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2003/05/23
  10. 오 나의 토끼 2003/05/20
  11. 내 방이 생겼네... 2003/05/04
  12. 난 TV를 보면서 잘 운다 2003/05/01
  13. 강추! 영화 '그녀에게' 2003/05/01
  14. 꿈 이야기 2003/01/29
  15. 귀국 2002/11/13
  16. 여행 10 2002/10/28
  17. 여행 9 2002/10/27
  18. 여행 8 2002/10/26
  19. 여행 7 2002/10/25
  20. 여행 6 2002/10/24
  21. 여행 5 2002/10/23
  22. 여행 4 2002/10/22
  23. 여행 3 2002/10/21
  24. 여행 2 2002/10/20
  25. 여행 1 2002/10/19
  26. 출국 2002/10/18
  27. 아니타 로딕, 영적인 비즈니스 2002/10/15
  28. 꿈, 비둘기 2002/10/14
  29. 리얼버전 처녀들의 저녁식사 2002/10/11
  30. Expiration Date: 2012 2002/10/09

어떤 사람은 항상 다니는 공간 안에서도 매일 다른 골목길을 찾아 다니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재미를 즐긴답니다.
그런데 저는 같은 길을 다니며 그 길의 날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을 관찰하길 좋아하는 편이지요.
그런 관찰이 누적되면 짧은 골목길을 지나는 동안에도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들을 담을 수 있고, 어느 가게에 앉아있는 아줌마가 그 집 주인과 어떤 관계인지 또 성격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되지요.

정류장 가는 길에는 횡단보도가 하나 있고, 그 횡단 보도 맞은 편에는 오래된 부티끄, 만두집, 약국.. 그리고 2층에 죽 전문점 등이 있습니다.

(그 만두집은 젊은 아저씨와 부인, 그리고 부모님이 같이 운영하는 듯한 손만두집인데 큼지막한 만두에 당면과 각종 야채, 고기가 빵빵하게 들어가 있어 왕만두 6개에 4500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을 받음에도 깔끔하고 좁은 가게의 문 밖에는 항상 기다리는 손님들이 넘쳐납니다. 횡단보도가 옆 블럭에서 그 만두집 앞으로 옮겨지면서 더더욱 장사가 잘 되고 있지요. )
토요일 오후, 그 횡단보도에서 녹색 신호가 켜지길 기다리는 동안의 풍경은 컷 컷 컷.. 일상을 담은 영화의 잔잔한 오프닝 씬 같이 느껴지더군요.

만두집 할머니가 만두를 찌는 솥을 살펴본 후 뚜껑을 닫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그 가게 앞에는 2층 식당에 배달 온 야채 트럭이 잠시 주차를 해놓고 있습니다.
트럭 앞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한 미소년이 고개를 들어 눈에 안약을 넣고 있습니다. 참한 손짓으로 안약을 넣고 있는 선이 가는 옆 얼굴은 여린 몸매와 어울려 굉장히 여성적으로 보였습니다.

한 여자가 그 소년 앞을 지나 오래된 부티끄 가게 앞을 걸어갑니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발걸음이 무거워 보입니다.
밝은 톤의 치마와 5센치 가량의 뮬을 신은 다리로 또각또각 걸어가는 그녀는 오늘 오후에 아무 약속도 없어서 조금 우울해져 있는 게 아닐까..

신호가 녹색으로 바껴 걸어나갈 때 문득 뒤를 돌아보니 퇴근길에 항상 나와있던 뻥튀기 아저씨의 트럭은 보이지 않더군요. 하나에 2천원씩이지만 3개 사면 5천원에도 준답니다. 집앞 뻥튀기 차에서 엄마가 성공했다는 그 방법이 퇴근길 그 뻥튀기 아저씨한테도 먹혔을 때, 뻥튀기계에 암묵적인 승인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길을 건너 버스를 타기 위해 트럭 앞 그 소년 옆에 저도 섰습니다.
앗 우연히 보게 된 그 소년의 앞모습은 뜻밖에 넙대대합니다. 실망... 이제 미소년은 넙딕이로 강등...
넙딕이 뒤의 트럭에서 야채 아저씨가 박스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검게 그을린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무척이나 흥겹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박스를 한손으로 번쩍 들고 배달을 가는 모습이 씩씩합니다.
아저씨가 2층으로 올라가자 저편에서 젊고 날씬한 여자가 양손에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넙딕이와 제 쪽으로 걸어옵니다.

엄마라고 생각하기엔 젊고 세련된 모습인데, 나이는 관리를 잘한 30대 초반 정도인 거 같군요.
유치원생 정도의 여자 아이가 누나, 2살 정도 아래인 듯한 남자아이가 동생인거 같습니다. 여자아이는 프티챌같은 과일푸딩을 한손에 들고 먹지 않고 입으로 껍질을 잘근잘근 씹으며 걷고 있습니다.

제 앞을 지날 때 여자아이가 건너편을 보고, "황지연~!" 하고 몸집에 안어울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를 칩니다. 그리곤 곧 30대초반 여자를 올려보며 "엄마, 지연이!"라고 가리킵니다. 엄마가 맞았군.
건너편을 보니 머리를 귀엽게 묶은 통통한 여자아이가 이쪽을 보고 있습니다. 길을 지나던 참인데 친구에게 발견되었군요.
엄마와 아들 딸은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습니다. 여자애는 자꾸 친구를 보며 "황지연! 너 거기 있어~"라고 소리치고, 건너편의 친구는 "뭐? 여기 있으라구?" 라고 말하며, 친구를 바라본 채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장난을 부립니다.
여자애가 다시 "황지연! 너 거기 있어. 가방에 까미있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엄마 손을 붙잡고 있는 남자아이도 "까미 있어~"라고 거듭니다. 동생도 누나의 친구를 아는 모양이죠.

마침 버스가 와서, 넙딕이와 함께 올라탔습니다. 저는 운전석 바로 뒷 자리에 앉았는데 출발한 버스는 한바퀴도 구르기 전에 보행신호에 걸려 다시 섰습니다.
앞 유리창으로 차 앞을 지나 길을 건너는 엄마와 아들딸이 보입니다.
까미라는 게 뭘까? 애완동물인가? 가방에 있다는데 어느 가방. 여자애는 책가방을 메고 신발 주머니 같은 걸 하나 팔에 걸고 있습니다.

건너편 길을 보니 황지연은 사라지고 없네요.
거기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뒷걸음질 장난에 심취해 가버렸나 봅니다.
길을 건넌 엄마와 남동생은 손을 잡은 채 계속 가던 길을 가는데, 여자애는 엄마의 손을 놓고 친구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좌 우를 살핍니다.
그 여자애의 신발 주머니 아래 부분이 둥글게 불룩하네요. 아마 거기에 까미가 들어있나 봅니다.
강아지인지 아니면 토끼인지... 아무튼 까만 놈이니까 까미라고 부르겠지요?

신호가 바껴 차가 출발할 때, 건너편에서 조금 실망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여자애가 보입니다. 지연이에게 까미를 진짜 보여주고 싶었는데 상심했나 봅니다...

Comments (2)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마음의 눈으로 보이면 이렇게 되나요?

lunatree:

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별 내용없이 길게 쓴 글 읽는 게 아주 고역이라고 하던데. ㅋㅋ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는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잖아요. 그걸 보는 게 좋아서 눈여겨 관찰하죠.

라디오가 있었지

from 분류없음 2003/06/26 03:28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라디오를 일부러 찾아 듣는 일이 없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차 안에서 교통방송을 듣거나, (최양락 아저씨의 프로를 틀어놓는 운전기사를 만나면 방긋 웃어주고 싶었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는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를 들으며 우울하게 가야했다.. 그래도 모닥불을 들으며 출근했던 날보다는 나았다. 뒤에서 따라부르는 아줌마도 없고..)
가끔 주말에 친구와 양수리로 드라이브 가는 길에 두시의 데이트를 신나게 들었던 시간들을 빼고는..

거의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전에 라디오를 듣곤 했는데.
좋아하는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주파수도 맞추고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양
소중하게 귀 기울여 들었었다.
그때 언니랑 같은 침대에서 자야 했는데, 언니가 시끄럽다고 해서 정말 정말 소리를 조그맣게 낮추고 이불 속에서 듣기도 하고 그랬다. (나쁜 -.-+)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나, 좋은 얘기를 듣게 되면 안 잊어버리고 새겨두려고 애쓰고.

중학교 때는 독서실을 다니면서, 더욱 라디오에 빠졌던 것 같다.
어른들은 라디오나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나무라며, 그런거 들으면서 어떻게 공부가 되냐고 하는데 정말 맞다.
그거 들으면서 공부 안된다.
한 9초간 책에 집중하다가 어느 새 들려오는 음악이나 얘기 속에 넋을 잃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가끔 웃긴 얘기가 나오면 독서실 여기 저기에서 동시에 풉-, 피식- 하는 웃음 터지는 소리나..
정말 정말 웃긴 얘기가 나오면 웃음을 참느라 다들 꺽꺽 거린다.

나는 이선영의 영화 음악실이나, 전영혁을 좋아했다.
내가 이선영의 영화 음악실이 그 이후 진행자들의 것보다 좋았다고 하니.. 그 아줌마 목소리가 꽤나 느끼한데 취향 참 독특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좀 있다.
난 지적이면서도 감성이 풍부한 그 목소리 좋던데. 그리고 이선영이 영화 줄거리를 얘기하면 얼마나 실감이 났는데...

전영혁의 프로는 희귀한 음악이나 새로운 노래들, 또 가끔은 견디기 힘든 음악으로 날 시험하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소개해준 많은 아티스트들이 조금씩 조금씩 나의 문화적 취향과 영역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없어졌을 때 전영혁 마저 없애면 이제 그런 음악은 어디에서 들으란 말인가 하고 통탄했는데, 부활해서 다행이다.

대학 가서는 김장훈의 우리들을 많이 들었다.
김장훈이 그 프로를 하면서 정말 웃기고, 팬도 많이 확보하면서 뜨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뜨기 전에.. 라디오에서 진솔하게 자기 얘기도 하고, 어려웠던 시절 얘기도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던 순수 청년 김장훈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주 오랜만에 집에서 작업을 하며, 라디오를 들었다.
때려주고 싶은 진행자들도 많았지만, 마지막에 전영혁으로 마무리해서 알찬 시간이 되었다.

다른 세계로부터 오는 전파.. 가끔 라디오로 돌아가고 싶다.

Comments (1)

마져...이선영 아줌니 지금 뭐하시나 몰라. 말끝의 억양을 그리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지.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블로그가 HAM과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 (얼마전에 봤더니 누가 글 중에 써놨더만.) 조각조각의 얘기들을 넓은 공간으로 날려 보내는 면에서 말야. (입만 열었다하면 블로그 얘기군... -_-;)

심슨만화 중에. 심슨 아저씨가 헐벗은 머리를 좀 울창히 해보고자
잘 듣는다는 발모제를 사서 바르는 얘기가 있습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몇몇 장면이 떠오르네요.

그 발모제를 정말 열심히 바르고 잠자리에 드는 심슨
이튿날 아침, 기대에 잔뜩 부풀어서 거울 앞에 딱 섭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머리는 더 나지 않았지요..
실망감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는데 그 순간 비명을 지릅니다.

발모제를 바른 손가락에 털이 한가득 나있던 것이지요.
음.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심슨의 발모제와 비슷한 게 또 있더군요.

제가 한 피부과에서 파는 화장품을 바르고 있는데요.
그게 아주 미세 박피 효과가 있어서 처음엔 각질이 많이 일어나지만
나중에 건강한 피부가 되면 피부트러블도 적어지고.. 뭐 그런다네요.
부지런히 바르고 있는데, 정말 각질이 많이 일어다더군요.

근데 오늘 아침에 버스에 앉아서 손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는데,
문득 둘째, 세째 손가락 피부가 많이 일어나 있더라구요.
이 손가락 두 개가 왜 이러냐.. 하고 곰곰이 생각을 했더니
바로 그 화장품을 바를 때 쓰는 두 손가락이었습니다.

내참..

항상 몇 달에 한 번씩 여자친구가 바뀌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인생을 동경하며, 연애에 대해서도 쿨~ 한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정말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얼굴 작고 예쁜 여자들을 좋아했지요.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 자랑해서 사진을 보여주고
몇 달 뒤에 물어보면 헤어졌다고 대답하는 것이 선배와 나 사이에 반복되었죠.

하지만 매번 사랑에 빠질 때마다 정말 좋아하고 설레어 하고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어서
괜찮았습니다. 다만 오래 가질 못했을 뿐이겠죠.
또 여자친구가 없는 기간도 그 중에 꽤 있었으니까... 그게 그 사람의 진실한 연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또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연애하는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음. 여자의 예전 남자친구가 둘 사이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런 아픔도 서로 잘 보듬어주고.. 잘 지켜주면서 사랑하는 모습에
'앗 이 인간이 진짜 짝을 만난 건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구요.
여지껏 사람을 사귄 최장기간인 1년 돌파 기록을 세우며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선배는 '정착'이란 단어를 떠올리게도 했죠.

이번달로 병특 생활이 끝나게 되자 선배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외국에서 1년 반 정도 지내며
영어공부도 하고 푹 쉬고 여행도 많이 하고 돌아 오겠다고 합니다.
훌쩍 떠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지만, 여자친구는 어쩌고? 하는 의문이 들어 물어봤습니다.
자기는 정리하고 가고 싶은데, 얘기를 했더니 여자친구는
떠나고 나면 알아서 정리할테니 가기 전에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네요.
"에.. 서로 진짜 많이 좋아하지 않았어? 그런 사람이라면 그냥 떠나야 한다고 정리할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음. 아냐. 나하고 안 맞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

뭐가 문제였는지 얘기를 들어보니..
여자친구는 집이 꽤 사는 친구인데, 언제인지 주위 친구 하나가 이것저것 사고싶은 대로 사다가
카드 연체에 신용불량자 처지가 될 뻔 했답니다.
그 친구가 친구들한테 손을 뻗쳐 막아보려고 돈을 빌렸는데.. 그때 이 여자친구도 돈을 빌려주고..
근데 문제는 이 여자친구도 헤프게 쓰는 편이었다고 하네요.
선배도 그다지 돈을 아껴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런 자기가 봐도 헤픈 정도여서 그런 문제로 많이 다퉜나 봅니다.
아마 이런 아이라면 평생을 같이 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요즘엔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사고마는 아이들이 참도 많더군요.
그런 습관이 무섭게 퍼지고 있는 거 같아요.

제 첫번째 인생 신조는 '빚지고 살지 말자' 입니다.
음.. 사실 사람들한테는 빚을 좀 집니다. 인맥의 덕을 좀 보기는 하죠.
저도 다른 이들한테 그런 도움을 주려는 편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 일에 관련있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후딱 떠올리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빚은 아직까지 절대 안된다는 생각이지요.
카드 사용을 권장하기 시작한 이후로 돈벌기에 혈안이 된 카드사 덕에 카드빚을 지게 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가족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신용 불량자가 되거나.. 그 때문에 벌어지는 흉악한 사건들이 .. 이게 얼마나 더 커질지 정말 걱정됩니다.

나중에 내 아이는 어릴 때 부터 경제 교육을 정말 잘 시켜야 겠다는 생각과
사람 사귈 때 경제력은 물론 소비습관도 꼭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s (4)

앗... 연예에 관한 얘기인 줄 알았더니 경제 교육에 관한 얘기였어?
호... 절묘한 주제의 유턴!

훈:

오우. 제가 아는 분이군요.

글쎄요. 지금 이날이 저에게는 봄날일까요 ?

lunatree:

헉 같은 코멘트가 이리 많이. 에러인가..
근데 누구신가요? 아는 분이라는데...

lunatree:

이상하다.. 아까 분명 훈님이 올린 동일 코멘트가 4개 있었는데, 제가 하나 올리고 나니 다 지워지고 하나만 등록되어 있네요.
허허 신기하다.
블로그 괴담에 넣어야겠네.

아담을 기다리며

from 분류없음 2003/06/06 12:5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사 베크의 '아담을 기다리며'를 다 읽었습니다.
다 읽은 지 이틀이 지났군요.

사실 이 책을 건네 받고 두어번 읽다가 몇십 페이지쯤에서
다시 일상의 스트레스 속에서 허우적 대느라 진도가 안나갔었죠.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한 정류장에서 흰색 셔츠에 곤색 바지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올라탔습니다.
한 명 두 명 학생들이 버스에 오르는 동아 무심히 창밖을 보다가.. 뭔가 이상해서 그들을 유심히 봤지요.
아마도 특수학교 학생들인 것 같습니다.
약간 모자라 보이는 아이, 자폐증을 가진 것 처럼 보이는 아이, 다운증후군, 유난히 폭력적인 아이..

평범한 학생들이었다면 중학생 2학년쯤은 되었을 아이들이었지요.
버스에 올라 타서, 요금을 내고, 자리에 앉기까지 저는 그들을 죽 지켜봤습니다.
제각각 보이는 특별한 행동들, 저마다의 외모, 또 어떤 아이가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는지, 누가 누구하고 친한지.. 누가 누군가를 챙겨주려고 하는지..

그런데 한 여자아이가 올라타는 순간 버스는 참 밝아졌습니다.
그 여자아이는 버스를 오르며 낯선 곳으로 가는 여행이 주는 흥분에 살짝 들뜬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단발 머리에 피부가 우유처럼 희고 눈이 크고 우아한 생김새를 가진 아주 마른 여자아이었지요.
요금을 내고 빈 자리 쪽으로 걸어오면서 내내 입술을 반짝이며 웃는 그 여자아이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어요.
저 아이는 무엇이 문제일까. 보통의 정상적인 아이었다면 어땠을까. 부모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그녀를 보며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한 여학생이 친구가 맡아둔 자리에 앉으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약간 통통하고 하얀 피부에 커다란 구슬같은 눈을 반짝이는 여학생이었죠.
윤기나는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고 친구와 아주 착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은 그녀의 눈은.. 송아지의 눈처럼 정말 맑고 순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눈이 그녀의 영혼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지요..

제 옆에서는 폭력성향이 짙은 남자 아이가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시비를 걸며 분위기를 험악하고 만들고 있었지만,
그녀 둘을 번갈아 보며 저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게 저런 거였지.. 맞아.. 하는 생각에 빠져있었죠.

폭력적인 그 남자 아이의 앙칼지고 큰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버스 안은 말 잘 듣는 착한 유치원생들의 소풍 버스같은 분위기였을 것 같습니다.
소리 없이 웃는 미소들, 낮은 말 소리들, 깃털같은 쓰다듬..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었죠.
처음에 경계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던 다른 승객들도 이내 원래의 무심한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죠.
그들이 타기 전까지 내가 무슨 생각이 잠겨있었더라...
회사 책상에 앉자마자 시작해야 할 일들, 하기 싫어 미뤄둔 일들의 데드 라인, 숨쉴틈 없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일들의 우선순위, 정말 그 사람은 왜 그런지 몰라...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 등등.

아이들은 선능역 정류장에서 내릴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건너편 길로 같은 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었죠.
친구들을 발견한 아이들은 '어 쟤네 벌써 도착했어!'하며 손을 흔들고 환호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마 선능역 잔디밭 위에서 무언가를 할 모양인가 봅니다. 아마 아기들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햇살 아래에서 장난을 치겠죠.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썰물이 빠진듯 버스는 무표정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난 회사 가면 할 일들에 대한 조바심 한 쪽으로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들...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인생의 가치들..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틀 후 쯤 다시 '아담을 기다리며'를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마사의 유머러스한 문장들을 읽으며 언뜻.. 무라카미 류의 '69'가 생각났습니다.
69를 읽으면서도 이렇게 피식 피싯 웃을 수가 있었죠.
이 책을 읽으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불행할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가둔 마음을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아담이 원하는 것을 바로 얻는 방식,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하려는 본능에 대한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것이 있죠.
난 몇 살이 되면 그때는 정말 00을 할 거야. 00하게 살거야.
하지만 안전하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 전까지 얼마를 모아야해.
직장생활을 몇 년은 해야 하고 매달 얼마씩은 모아야 하지..
그런 것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에게 어떻게 부자가 되었냐고 물으면 많이 저축을 해라라고 대답하잖아요.
중간 과정을 건너 뛰고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하는 건 당연하지요.
하지만, 자신이 그때 하려는 것을 지금은 왜 못하는지.. 스스로 어떤 시나리오를 짰길래 자신을 막고 있는 것인지..

음.. 이 얘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
어쨌든, 그런걸 다시 다 생각하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하고 안 풀리는 일도 많지만,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한번 그런 시간을 가져 볼까 합니다.

Comments (3)

비슷한 고민을 하는것 같아서~~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해 지는데요?

69.. 가끔씩 다시 읽게되는 책입니다. 99년에 샀네요.
아담.. 얼마전에, 교보에서 한참동안 망설였었죠. 하지만.. 안읽기로 했었어요.
읽기로 하고, 쌓아놓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해가 갈수록, 어떤 종류의 책들은 읽을 용기가 사라지나봐요..

lunatree:

맞아요. 그런 책들이 있지요.
그런 책을 집기 전까지 나에게 손짓하는 업무 관련 서적들, 꼭 알아야할 트랜드를 알려주겠다고 속삭이는 실용서들.. 그런 책들을 무시하고 눈 딱 감아야 하는 고비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조금 두꺼워 보이지면, 쉽게쉽게 넘어가니 조금만 투자하면 금방 읽거든요.
꼭 읽어보라고 받은 책들과, 제 자신이 느끼는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두툼한 책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또한 어떤 숙제처럼 자꾸 미뤄두면 마음만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도공간

from 분류없음 2003/06/06 01:07

회사 사람들이랑 수요일마다 스터디를 합니다.
늦으면 벌금, 안와도 벌금, 과제를 안해도 벌금..
그렇게 모인 벌금으로 영화 보기 번개를 했죠.

니모를 찾아서와 이도공간 중에 이도공간으로 결정이 되어서 오늘 저녁 보고 왔습니다.
영화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자 몇명이 유인물을 나눠주며
영화 끝나고 스탠딩 오베이션을 해달라고 얘가하더군요.
장국영을 추모하기 위한 기립 박수를 부탁하는 그녀들은 장국영 팬클럽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극장 안에서도 장국영 팬클럽 회원들이 군데 군데 심어져 있더군요.

영화는.. 썩.. 그리. 뭐.. 그랬습니다.
장국영을 보고, 그의 연기가 어땠는지 다시 생각이 나고.. 하지만 장국영도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도 했지요.
저렇게 열연을 하고 있는 추억의 배우가 정말 과거 속의 인물이 되어버렸구나.

음, 영화 얘기를 하면 공포영화인데 아주 사운드 때문에 깜짝 깜짝 놀랍니다.
근데 분장이나 여자애 소리가 너무 분위기를 깨서 그 공포감이 뚝 떨어졌지요.
처음에는 좀 무섭습니다. 아주 그럴 듯 해요.
보러 가고 싶으신 분도 있을 것 같지만, 그냥 얘기해 버린다면
관절염 걸린 귀신이 나오구요. 황조가의 한 장면도 연출됩니다.

저는 공포영화에서 하도 당해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어서 그리 놀란 편은 아닌데,
정말 심하게 놀라시는 분들은 소리도 지르고, 고개를 떨구기도 하고, 막 의자 위로 올라가기도 하더라구요.

영화 끝나고 나오는데 보니까 팬클럽 회원분들은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치면서
막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우시더라구요.
얼만큼의 그리움이었을까.
장국영...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물 속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공포가 좀 있었는데,
첫 날 수영장 바닥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다이버들의 모습을 보고 뭔지 모를 느낌이 팍 오더군요.
그 풍경은 아직도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는데...
전혀 다른 세계, 다른 환경을 탐험해 볼 수 있다는 그런 설레임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속초 문암에서의 첫 해양실습에서 바다 속 5미터 정도 내려갔었지요.
시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수영장이 아닌 바다 속을 수영하면서 정말 흥분되었습니다.
이건 진짜야.. 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어요.
가라앉기 위해 웨이트를 12키로나 차고, 공기통을 지고..
흐 그것 만으로도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버둥대고 있었죠.
그때 제 버디가 톡톡 쳤습니다. '저 쪽을 봐라'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곳을 보니
내 머리 위로 멸치 떼가 햇빛에 반짝이며 헤엄쳐 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예쁘고 멋졌습니다. 멸치 떼에 감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이버의 꿈, 팔라우의 블루홀이랍니다.
T.T

해양실습을 마치고 오션 다이버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아마 필리핀의 바다에 가면 전 감동받아 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다이버가 보고 싶어 한다는 고래상어,나폴레옹피쉬(범퍼헤드),만타레이...
실제로 보면 숨이 막히는 장관일 것 같네요.

Comments (2)

와~~~멋있네요~~바다속 여행이라~~

lunatree:

멋지죠. 잘해야 멋진데 아직은 폼이 영... ^^

꼬마들

from 분류없음 2003/05/24 12:12

첫째 조카가 이제 여섯 살, 둘째 조카가 세 살..
그 놈들 크는 것을 같이 부대끼며 봐왔으니 웅얼웅얼 하던 놈이 엄마! 아빠!하고 어느날부터 지 생각을 말하고 이제는 우기기까지 하는.. 그 과정을 잘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게 참 신통하다.
어느 날 머리 속에 안개가 걷히면서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 분명하고 복잡하게 하기 시작하는 게.
무엇보다 녀석들이랑 바보처럼 웃으면서 어울리고 노는 순간들이 가장 멋지다.

첫째에 비해서 말이 늦은 둘째 조카는 이제 막 말을 더듬더듬 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애용하는 문구가 '칙칙 폭폭 땡~' 이거다. 뭐라고 질문을 하든 지가 내키면 무조건 칙칙폭폭 땡~...
저번 달에는 회사에서 일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네에 있는 둘째 놈이 놀다가 문득 베란다 문을 열더니, '이모~'하고 불렀단다.
이모가 보고 싶은 것 같으니 긴급 출동을 하라는 명령이었다.
쩝.. 조금 감동 먹었었다. 짜식.. 날 그렇게 좋아할 줄은.

봄이 막 왔을 때 첫째 놈한테 할머니가 상추 화분을 선물로 줬다.
무지 기뻐하면서 조그만 컵에 찰랑찰랑 물을 담아서는 부지런히 물을 주고, 상추 주위도 예쁘게 꾸며 주겠다며 이상한 깃털을 심어주고 그랬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녀석이 언니한테 "엄마, 식물도요. 사랑해줘야 잘 큰대요"라길래 "그래? 사랑을 어떻게 주는데?" 했더니..
화분이 있는 베란다 문을 열더니
"상추야! 사랑해!!!" 하고 큰 소리를 치더란다. 사랑수여 끝.

오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대학 동창이 쓴 글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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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실습 기간...
그런데 이상하게도, 꼬마녀석들이 노래를 부르면 난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한다.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닌데...
부산하다가도, 노래 반주가 나오면 너무 귀여운 표정들로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있으면, 코끝이 간질간질해지면서...
나이 들어서 주책이다...(표준어는 '주책이 없다')

오늘도 역시 그림에 색칠을 하는동안 선생님이 음악을 틀어주자, 꼬마들이 꼬물거리면서 신나게 합창을 하던데...노래를 잘 들어보니 일본어로 흘러나오는 '토토로 ost' ...다들 각자 열심히 색칠을 하다가도 후렴부분의 '토토로~~~' 이 부분이 나오면, 색칠을 멈추고 정말 하나된 목소리로 토토로를 외치는 표정들이라니...ㅋㅋㅋ
근데 초등학교 2학년짜리들이 일본어로 된 토토로 노래를 다 외우더라구요.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절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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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들이 합창을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이잉~~~ 귀여워.

극장에서 토토로를 보던 때가 생각난다.
메이가 언니를 뒤따라 막 뛰어가는데 먼저 간 언니가 저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메이는 골목 어귀에서 언니가 어디로 갔는지 두리번 거리는 장면이었다.
관객이 앉아있는 쪽이 언니가 달려간 골목 쪽이고 저쪽 편에 갈 곳을 모르는 메이가 보이자,
엄마 아빠 옆에 앉아있던 꼬마들이 일제히 "이쪽이야! 이쪽!" 하고 크게 소리를 쳤다.
한 놈은 벌떡 일어나 스크린의 메이를 향해 손짓을 하기도 했다.
얼마나 애가 탔으면...

저도 올해 안에 조카가 생기는데.... 예쁜 조카를 위해서 사진공부도 열심히 하고 예쁜 육아일기 홈페이지도 준비해야 겠어요~

정말 오랜 만에 일찍, 7시 반쯤 퇴근을 했다.
저물녘이지만 이 정도면 밝고 좋아.. 거리를 지나 버스를 탔다.

뒤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아서 가는데 뒷 자리에 앉은 남자 둘이서 하는 얘기가 들렸다.
언뜻 'tommorow..' 어쩌구 하는 짧은 영어가 들렸는데, 한 남자는 미국 생활을 오래 했거나 교포인 듯 한 발음. 다른 남자는 평범한 한국 사람인 것 같았다.
둘은 영화를 찍는 일을 하나 보다.
내일 촬영은 어쩌고, 오늘은 캠을 드느라 어깨가 아팠다. 오프닝이랑 엔딩을 무지하게 길게 만들자. 100부터 카운팅하면 어때, 좋은 생각이지?.. 하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미국발음이 섞인 남자가 '근데 너 영화는 어떤 거야? 첫 장면 부터 끝에까지 얘기해봐'하자 한국토종발음이 얘기했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어떤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가. 버튼을 막 눌러. 인터뷰가 있는데 늦은 거야. 그래서 막 정장 입었는데 넥타이 매면서 엘리베이터 기다려. 문이 열려서 탔는데 안에 여자가 있는거야.
근데 왜 같은 동네에 한 아파트 사는 사람이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어색하잖아. 뻘쭘하잖아. 원래 엘리베이터에서는 다들 그렇잖아.
그래서 내려가는 동안 서로 서서 있는데, 남자 시점에서 여자를 좀 흘끔흘끔 보는거야. 약간 관심은 가는데 뭐 그냥 내려가.

문이 열리면 이 남자는 다른 데로 막 가는데, 어떤 빌딩 화장실로 들어가. 오줌 싸러. 그런데 또 다른 남자가 하나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나란히 옆에 서는데 왜 그렇잖아. 오줌 싸러 서 있어도 다른 사람이랑 옆에 있으면 어색하잖아.
그리고 먼저 있던 남자가 오줌 다 싸고 나가면 이제 이 남자를 카메라가 따라가는 거야.

이 남자가 걸어서 지하철 타러 계단을 내려가. 이 남자가 내려가고 한 여자가 올라오는데 남자랑 둘이 부딪혀. 그래서 뭐가 떨어져. 지갑 같은거.. 그래서 딱 여자가 주우면 그때 부터는 이 여자의 시점이 되는건데, 이 여자가 아까 첫번째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인거야.

그러니까 처음에는 여자 얼굴을 보여주면 안되지. 그리고 지갑을 주운 후부터는 뒤로 가는 거야. 여자가 남자랑 부딪히기 전에 지하철을 타고, 거리를 걷고, 뭐 다른 가게에도 들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고, 엘리베이터에 한 남자가 타고 그렇게 뒤로 가는 거지.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여자도 남자한테 마음이 있어서 남자를 살짝 보는 걸로.. "

얘기를 다 들은 미국식 발음이 묻는다. 꼭 지오디의 박준형처럼..
"야 그러면 여자는 어떻게 뒤로 가게 할 거야?"
"어? 그냥 찍어서 필름을 리와인드 해야지."
"연기를 뒤로 가게 하는 건 아니고?"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찍기 어려울 거 같아서"
"너 뒤로 걸어봤어? 그거 되게 이상하잖아. 못할 걸 아마."
"응. 그니까 정상으로 찍은 다음에 뒤로 돌려야지"

커피빈 앞 정류장에 왔을 때 남자 둘은 내렸다.
남자들이 내린 후에 생각이 났다.

예전에 그런 말 한 영화 감독인가.. TV에서인지 잡지 인터뷰에서 얘기한 건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자기가 고등학교 때 쯤 대한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보는데, 우연히 2층에서 음료수 캔이 떨어지는 걸 봤다고.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흘러 같은 쪽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니, 그 때 그 음료수 캔이 떨어지는 걸 그 사람도 봤더라고. 음료수 캔이 2층에서 1층으로 낙하하는 순간 둘은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음..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장만옥에게 몇날 몇일 자기와 함께 한 1분을 기억시키는 것과는 반대라고 볼 수 있겠지.

나중에 그 한국식발음이 영화를 만들게 되서 내가 그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그 영화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그런 단편 영화를 만들어 보려고 버스에서 친구에게 말을 한 적이 있었고, 그 얘기를 하는 순간 앞 자리에서 듣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는 날이 올까?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그 노래 제목이 떠오른다.

오 나의 토끼

from 분류없음 2003/05/20 12:34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봄날 저녁의 쌀쌀한 기운에 잔뜩 움츠리고 종종 걸음으로 아파트 뒷길을 다 걸어왔을 때쯤.
보도 위에 하얀 토끼 한 마리. 멈칫.
영숙이??
그 토끼는 내가 전에 키우던 영숙씨라는 토끼를 꼭 닮았다.
(내가 미국에 3주간 여행을 간 사이.. 알레르기에 시달리던 엄마가 아파트 앞 학교 정문에 토요일마다 나오던 토끼장수에게 줘버렸다. )
순간 내가 지켜주지 못한 토끼가 새 주인에게 버림을 받고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울컥 했다.

하지만.. 영숙씨보다는 몸집이 작은 놈이었다.
하얀 등에 점점이 있는 얼룩은 정말 똑같은데...
영숙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영숙씨를 닮은 다른 토끼일 것이라는 확신 사이에서
나는 토끼를 불러봤다.
쪼쪼쪼쪼.. 영숙아~

토끼는 옆눈질로 부지런히 나를 경계하며 이리 저리 피해 폴짝 거렸다.

토끼를 내쫒으려는 엄마의 성화가 거세어 질 쯤에 영숙씨(수컷)에게는 점점 암컷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안타깝지만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몰라서 중성화 수술도, 암컷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갖다 버릴까봐 이것저것 우리며 밥그릇이며 돈을 들여 샀다. 사료도 푸짐하게 쟁여놓고..
봐라, 돈 이만큼 들였으니 갖다버리면 손해다. 하며 큰소리도 쳐봤지.

엄마가 토끼장수와의 접선을 시도했을 때..
토끼 장수는 안그래도 새끼 뺄 숫놈이 필요했다면서 영숙씨가 예쁘게 생겼다고 좋아했단다.
어쩌면.. 암컷을 만나 욕구를 해소할 수 있어서 영숙씨에게 잘 된 일일지도 몰라..

어두운 밤. 컴컴한 아파트 뒷 길에 .. 내 눈을 확 밝히며 조용히 나타난 흰 토끼 한마리.
그 놈. 어쩌면 그렇게 토끼 장수에게로 간 영숙씨의 새끼, 또는 손주뻘일지도 몰라.

주위에 주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없고, 녀석도 당황한 것 같은데
이대로 뒀다가는 사나운 떠돌이 고양이를 만나 해를 당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을텐데,
먹을 것이나 찾아서 먹을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요리조리 나를 피해 폴짝 거린다..
이 놈을 구해서 집에 데려가는 것이 옳을 것인지 고민을 하다 결국 추위 속에 나는 포기를 한다.

그 토끼...
정말 영숙씨였는지, 영숙씨의 새끼였는지, 영숙씨를 닮은 다른 토끼인지, 아니면 영숙씨의 환영인지...
그렇게 거리의 동물이 되어버릴 운명이었다면 어디 깊은 산 속에서 태어나지 그랬니.
제발 어느날 아침 출근 길에 다리를 하늘로 향한 처참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일은 없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미안하다 영숙아. 그 보드라운 털. 손가락을 핥던 가느다란 분홍 혓바닥, 털손질을 하다 문득 쳐다보던 까만 눈.
그렇게 보낸 모든 동물들에게 미안하다.

Comments (3)

저희 사무실에도 이전에 토끼가 몇 마리 있었는데..

건강하고 자라지 못해서 ㅠ.ㅠ

lunatree:

와. 사무실에서 토끼를 키웠다니.. 자유분방한 분위기인가 보죠. 디자인 회사나 프리랜서들이 모여있는 사무실에서는 고양이 키우는 건 많이 봤는데... ^^

아주 열려 있는 회사랍니다.
디자인 회사는 아니구요 wsp (webhosting service provider)라고 웹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랍니다.

내 방이 생겼네...

from 분류없음 2003/05/04 02:56

셋방을 줬구려.
이제 어딘가 얘기를 풀어놓고 싶을 때 마다 찾아들어야 겠군.
쫒기듯 흘러가기만 하는 날들을 잠시 담아둘 수 있겠어.
정말 그래. 몇 개월의 시간들을 다 회사 앞 모니터에서 보내버리고
봄 꽃은 후둑- 빗방울에 다 떨어져 버리려나..
엄마는 하루종일 tv를 보는데, 왜 일기예보 하나 제대로 전해주지 않는거야.
오늘은 우산이 없어서 퇴근 후에 그대로 비를 맞고 돌아왔지.
처음에 회사에서 나올 때는 굵은 빗방울에 놀라, 헉! 택시를 타야겠군 했다가.. 조금 걸어보니, 건너서 타는게 요금이 조금 나오겠는걸.. 건널목을 건넌 후엔... 에잇. 이왕.. 버스 정류장까지 가자. 그래서 계속 비를 맞으며 걸었는데.
참.. 상쾌하더군.
지나가는 남자는 날더러 '허, 저 여자는 비 다 맞고 가네' 라지만..
그래서 우산 씌워줄 것도 아니면 조용히 지나가지.
엄마는 오늘도 졸다가 리모콘 툭- 떨어뜨리는 소리를 내며 밤 늦도록 tv 앞을 지키고 있겠지.
그 소리에 잠 부족한 나만 흠찟 깬다.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프로그램에서 안타깝고 마음 아픈 장면이 나오면 여지없이 훌쩍거리고,
느낌표의 아시아 아시아를 보면 대성통곡을 한다.

오늘은 밭 한가운데 장롱 속에서 지내는 기이한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보다가 울었다.
장롱 속에 사람이 산다는 호기심으로 접근해보니, 갓쓰고 한복을 입은 조선시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할아버지가 장롱 속에서 나온 거라.
낮에 다시 찾아가 보니 장롱 두개를 길게 이어서 문짝에 초인종도 있고, 자기가 쓴 글씨들을 붙여둔 장롱 안에서 할아버지가 지내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정말 아이 같은 그 할아버지는 낮에는 밭을 갈고, 피로하면 장롱 안에서 낮잠도 자고, 열어둔 장롱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한가롭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잠에 빠지더라.

근데 그 할아버지가 마실을 간다며 찾아간 곳은 자식들이 살고 있는 번듯한 주택.
1층은 양옥, 2층은 한옥으로 잘 지은 그 집이 원래 할아버지 집인데.. 할아버지가 장롱에서 지내게 된 이유는 이렇다.

사이좋던 노부부 중에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는 몸져 누웠다.
보다못한 자식들이 할머니 물건을 다 없애버리면 덜 생각이 날까 싶어 할머니의 것은 모조리 버렸다.
그러다 어느날 꿈에 어느 산 아래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 장소로 달려가니 그 곳에 할머니가 쓰던 장롱이 버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울면서 장롱을 쓰다듬으며 할머니 생각을 했고, 그 장롱곁을 떠나지 못하고 종일 그곳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훈장, 이장도 하고 지역 고문으로도 지냈다는 그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가지 말라고 해도. 내 마음은 내가 정하고, 네 마음은 네가 정하는 거야 라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장롱이 있는 곳으로 간다.

장롱 안에 붙여 둔 할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아직도 모습이 훤하다며 참 보고 싶다고 말하는 할아버지를 보니 둘의 각별한 마음이 느껴지고, 또 우리 외할아버지도 생각이 나서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평생 퍼주는 사랑만 베풀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중에 해줄게

Comments (2)

dakini:

화진아, 안녕? 가영이야.
어찌하다 흘러흘러 놀러온 모양이다.
전에 타임머신인가? 할머니 기일에 1년만에 돌아가신 금슬좋은 할아버지 얘기를 보고 짠했었는데.. 사랑하며 늙어가는 부부가 있다는 것 당연한 일이면 좋을 텐데 이다지 짠한 일이라니..
맘 아프고 슬픈 일만 있는 이야기 보다 그래도 나보다 더 사랑하며 사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많이 난다. 오래 따뜻하게 사랑하는 마음도 사람이 갖고 나는 재능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이 잠시 든다.

lunatree:

네. 맞아요.
저 또한 사랑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랍니다.
그리고 사랑을 잘 할 줄 아는 것은 복이기도 한 것 같고.
친구 하나는 자신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연애를 반복하다, 지금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고민하며 '사랑을 더 잘하기 위한' 연구 중에 있대요.
근데 어쩌면 덜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생기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하네요. 그럼 그 친구가 '연애를 더 잘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고 해야 맞을라나..
사랑하는 것과 연애는 다른 것인지..

사실 시사회를 보기 전까지는 제목도 들어본 적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 시사회란 것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간혹 연락하는 초등학교 친구가 못가게 되었는데 저희 집이랑 가까운 극장에서 하는 시사회니까 갈 수 있으면 가 달라고 연락이 왔던 것이었습니다.
시사회 응모했다가 안 가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나..

아무튼 이리저리 연락해서 짝을 하나 찾아서 영화관에 갔지요. '그녀에게'란 제목이 어딘가 덜 끝난 느낌이 있어서.. 왠지 모를 엉성함도 있고 말이지요.
친구가 저한테 준 사전 정보라고는 제목이 '그녀에게'다, 유럽영화다. 이거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첫 장면.. 이 영화가 내가 기다려온 영화라는 것을 직감하게 했었죠.
또 스페인의 공연 문화가 그렇게 수준이 높은지..
음악과 이야기와 공연 예술과 연기, 영상... 이 모든 요소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녹아있는 영화였습니다.
배우들도 빠지는 사람 한 명 없이 고른 연기 수준을 보여줬구요. 찰리 채플린의 딸 제랄딘 채플린도 볼 수 있습니다.

'해피투게더(춘광사설)에서 장진이 이구아나 폭포 밑에 서 있는 모습을 비추는 장면에서 처음 들었던 노래를 이 영화에서 다시 듣게 됩니다. (제 기억이 맞나요? 정확히 이 장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춘광사설 OST 첫번째 트랙으로.. 우렁차게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이 노래가 서서히 흘러나옵니다.)
바로 Caetano Veloso가 부른 'Cucurrucucu Paloma' ...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를, 가수가 직접 부르는 그 장면동안.. 그 목소리가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더군요.

코마 상태의 두 여자와 그녀에게 얘기하는 두 남자에 관한 얘기입니다.
이 영화에는 현대 무용계의 대표적 인물인 피나 바우쉬의 공연이 두 번 나오는데... 마지막 장면의 공연이 곧 한국에서 있을거란 소식에 바로 예매를 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고 와서 두번째 리뷰를 적도록 하겠습니다.
싱싱하게 막 피어나는 꽃 송이 같은 ...

Comments (3)

저는 이 영화 두번. 봤습니다.

광화문 씨네코아에서요. 소극장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어찌보면 어울리는 조합인것도 같습니다.

보고나서 그날저녁까지 계속 영화가주는 분위기에 휩싸여있게되더군요.

아마 비슷했겠지만, 첫장면에서부터 사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립니다.

마찬가지로.
강추입니다.

깨비:

삽살한 10월의 가을 바람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왠지 모를 허전함에 남편과 할 일을 팽개친 채 비디오방으로 향했습니다. 무심코 를 집어서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나봅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2%가 그 영화로 인해 가득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코마상태에 빠진 여자를 4년간 돌보며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결국은 기적을 만들지만 그는 감옥에서 그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영원히 그녀 곁으로 가기 위해서. 그가 감옥에 가게 된 이유는 영화로 확인하세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스페인의 명물 투우 장면과 아름다운 노래, 무용 그리고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배경음악들이 잘 어우러져 보는 재미와 듣는 즐거움을 모두 충족시켜 줍니다.
꼭 보시고 이 가을 아름다운 사랑을 하시길 바랍니다.

^^ 영화를 보고 한참 지나서 생각하니 '인생은 아름다워'와 닮은 면도 있더군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마리코역을 맡은 배우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는데, 주위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네요.(머리 벗겨진 아저씨 말야? 하면서..-.-)
이 다리오 그란디네티라는 배우의 힘들어가지 않았으면서도 곧은 자세, (걸어갈 때나 서 있을 때나..)
그리고 자연스럽고 여유로워보이면서도 세련된 옷 스타일도 마음에 들던데.

LG 아트센터에서 '마주르카 포고'를 봤는데.. 영화에서 보던 무대세트와 달리 바윗돌 해변으로 설정했어요. 근데 영화에서의 무대가 더 환상적이었는데.
연극적인 요소도 많고, 성적인 유머와 비유가 역동적으로 표현되고, 재미있고 신선한 아이디어도 많이 쓰였죠.
그치만 기대가 너무 컸던지.. 영화에서의 그 이미지가 최고였답니다. (풀빛이 흐르는 무대 위에 왼쪽에서부터 일렬로 선 남녀가 골반을 흔들며 실룩실룩 오른쪽으로 나오는 이미지)

꿈 이야기

from 분류없음 2003/01/29 03:10

2001년 7월 14일 꿈.

안개가 자욱한 숲.
난장이라도 살 것 같은 늪지.
우리 가족들이 그 깊은 계곡에 살고 있었다.
아빠가 계곡의 집 뒤로 길이 새로 생기고,
버스도 다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집 앞 늪을 메우고 다른 곳으로 갈 지도 모른다고.
혼자 집 안에서 쌍둥이를 낳았다.
하나는 흑인, 하나는 백인인 쌍둥이를.
아이를 이불에 싸서 눕히고,
자꾸만 밖으로 삐져 나오는 발도 꼭꼭 쌌다.
전화를 하니 남자친구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7월 14일 오후.

일 때문에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전철 안.
사람들이 많이도 앉고 서 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바닥에 한 켤레는 분홍, 한 켤레는 노랑색의
똑 같은 슬리퍼가 놓여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내리자,
내 맞은편에는 30대의 퉁퉁한 아저씨가
양 옆에 남자 쌍둥이 아이를 안은 채 중간에 앉아있었다.
유치원 가방을 맨 채 잠에 겨워 몸도 못 가누는 아이들을
아빠는 조심조심 편안하게 싸 안고 쓰다듬으며
가방 끈이 꼬이지 않는지, 머리가 뒤로 넘어가지 않는지 쉬지 않고 살핀다.
나는 그 모습에 반한 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자친구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귀국

from 분류없음 2002/11/1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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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돌아와보니, 하룻밤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다.
뉴욕의 거리, 특유의 칼라톤, 스치는 사람들의 냄새, 눈길들..
3주 동안의 여행이었는데 집앞에 도착하니까 모두 꿈이었던 거 같다.
익숙한 동네, 다시 보는 얼굴들.. 다시 반복되는 생활의 틀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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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란 곳.. 눈으로 다 보긴 했지만 어떤 곳이었다.. 라고 정리하기가 힘들다.
옛것과 최신의 것이 뒤섞이고, 부자와 홈리스가 같은 거리에 살고, 온갖 종류의 문화가 공존하는.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살고싶다라고 말하기에도 그렇지만
뉴욕, 그 곳이 있더라.. 정도의 느낌인거 같다.
매일매일 숨가쁘게 돌아가고 생활을 걱정하고 일상의 틀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즐기고 누리는 대신 불어난 책임을 맡는 사람들.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기를 싫어하고 혼자 자유롭게 살지만 외로운 사람들.
누군가 희한한 짓을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재밌어 하고 같이 놀아보려는 사람들.
뭐 그런 이미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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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탐험하듯 돌아다니던 맨하탄 시내, 공원, 박물관과 갤러리들, 크고 작은 가게들, 별의별 물건들,
칙칙한 지하철, 다양한 사람들... 한컷 한컷 떠오른다.
두고온 내 친구. 혼자 각박한 생활에 헉헉 대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내 친구.
그녀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우리 또 언제 만나지..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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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0

from 분류없음 2002/10/28 03:09

10월 28일
아침에 일어나서 오빠는 출근하고 오빠의 와이프인 영희 언니와 앉아서 어떻게 연애를 해서 결혼에 이르게 되었나..에 대해 한참 얘기를 한 후 바다를 보러 가자며 집을 나섰다. 몽탁의 바다가 정말 멋지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너무 멀어서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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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많이 낀 추운 날이었는데, 하얀 백사장이 끝없이 이어진 해변이었다. 갈매기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굉장히 커서 히치콕의 영화 새가 생각나도록 겁이 나는 놈들이었다. 파도가 일때 물결 사이로 언뜻 보이는 바다의 색깔은 초록빛이었지만 하늘이 어두워서
전체적으로 회색 그림자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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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에서 새들이 먹고 남긴 굉장히 큰 생선 뼈를 발견했다. 주위엔 무수히 많은 새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어서, 살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미터는 되는 것 같은 생선을 비늘만 얇게 벗겨 뼈만 앙상하게 잘도 발라먹었다. 앞에 가던 노 부부 중 할아버지가 씨베쓰의 뼈라고 알려줬다. 무게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이걸 여기까지 끌고 와서 먹었는지.. 새들의 힘이 굉장하다.

어쩌다보니 우리가 그 부부의 뒤를 따라가게 됐는데, 앞서 가면서 모래 속의 조개 이름이며 불가사리 같은 것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서 열심이었다. 아마 전직이 선원이나 어부가 아닐가 싶었는데, 감정 표현도 풍부해서 별거 아닌 것에도 감탄하느라 할머니는 연신 탄성을 지르며 계속 믿을 수 없다고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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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돌아가려는데 이상한 기계를 들고 동전을 찾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탐지기 같은 기계가 계속 삐-삑- 소리를 내며 금속성의 물체를 찾는데, 추운 바다바람에 얼굴과 손이 뻘겋게 되어 이 넓디넓은 모래사장을 뒤지고 있는 할아버지를 말없이 구경하다가 뭘 찾냐고 물어봤다. 동전을 찾는 중인데 기계가 망할 놈의 병뚜껑만 잡고 있다고 불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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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블루밍데일, Macy’s 등등 4개의 백화점이 함께 있는 쇼핑몰에 들렀다. 언니가 좋아한다는 BOMBAY라는 인테리어 소품 가게에 들러 이것 저것 구경했다. 고풍스러운 작은 가구들에서 소품함들.. 섬세하고 예쁜 다양한 장식품.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두고 그 앞에 트리 장식물들을 쌓아두고 팔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구경할 때 장식 구슬 하나가 또르르 굴러서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헉, 순간 이걸 물어줘야 하나. 주인이 봤나 주위를 살피니 우리 뒤에 할머니 손님 둘만 있었다. 그 할머니 둘이서 우릴 보더니 오오~ 난 아무것도 못봤어. 어서들 가라구. 하면서 윙크와 손짓을 한다. 할머니들의 응원에 태연하게 가게를 스윽 나올 수 있었다. -.-;

타코벨과 또다른 멕시칸 체인점에서 밥을 먹었는데 콜라를 너무 큰걸 줘서 먹어도 먹어도 줄지가 않았다. 이걸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경악스러웠다. 한아름에 들러서 장을 보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유진오빠와 맥주 한잔을 하고 잤다.

여행 9

from 분류없음 2002/10/27 03:09

10월 27일
원래 MOMA에 가기로 한 날인데, 전날 쇼핑에 너무 열을 올리는 바람에
온몸이 쑤셔서 애들이 학교가서 인터넷이나 하자는데 집에 있었다.
오후에 유진오빠와 만나서 오빠네 집에 가야했다.
오빠가 마침 팔리세이즈팍에 아는 사람 결혼식이 있어서 올건데,
결혼식장으로 와서 밥이나 먹고 같이 가자면서 '대원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보통 미국의 한인들이 결혼식을 식당에서 많이 한다는데 결혼식하고 밤까지 논단다.
결혼식장에 가서 누구 식장을 찾으면 되냐고 물으니 신부 이름이 '김복자'란다.
내가 쿡-하고 웃으니, 오빠가 웃지말라고 그 언니가 슬퍼한다며 쌍둥이 자매인데
동생이름은 '김복실'이라고 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미국의 한인 결혼식
콜택시를 불러서 대원식당으로 가서 오빠를 만났다.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치르고, 테이블 세팅을 할 동안 칵테일 바에서 간단히
먹을 것들을 먹고 홀에 들어오니 DJ가 2부 순서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곳엔 파티에 출장오는 전문 DJ 회사들이 있다. 한국인 남자와 백인남자 2인조의 DJ팀이었다.
신랑,신부 그리고 부모님들이 차례로 홀에 입장하면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First dance는 신랑 신부가, 그 다음은 부모님이랑 같이, 그리고 사람들이 다 어울려 춤을 췄다.

부페를 먹고, 부케를 던지고, 가터를 던지고 축가를 부르고..
난 생전 처음 보는 사람 결혼식에 가서 졸지에 신부 친구가 되어서는
신부를 위한 축가를 부를 때 뒤에서 백댄서도 해야했다.
DJ가 우리가 앉은 테이블이 제일 분위기를 잘 띄울 것 같았는지
우리 테이블 사람들을 모조리 나오게 해서 그 뒤에서 손을 흔들며 춤을 추게 했다.
남자들이 신부가 앉은 의자를 들어서 상대 이름을 부르게 하고,
여자들이 신랑이 앉은 의자를 들어서 상대 이름을 크게 부르게 했다.
또 가터 받은 신부 친구가 나와서 가터를 허벅지에 끼면
신랑 친구가 나와서 입으로 그걸 벗기게 한다. 원래는 신부어머니한테도 시킨다고 하던가..
DJ가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을 주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나설 것도 없이
중년의 하객들.. 어디서 그렇게들 배워왔는지 사교댄스를 멋드러지게 추시더라.

오빠 친구들과 섞여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오빠네 집으로 왔다.
오빠네 집은 Queens 쪽의 Fresh Meadows라는 곳에 있었다.

여행 8

from 분류없음 2002/10/26 03:09

10월 26일
맨하탄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너무 졸려서 창가에 앉아서 정신없이 잤다.
중간에 라틴계 남자가 옆에 앉는 것을 어렴풋이 보고 계속 자는데,
깰 때마다 이 남자가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무슨 일이 있을 때 해줄 욕들을 생각해두고 다시 잠들었던 거 같다.
맨하탄에 다 도착해서, 벗어뒀던 자켓을 입으려고 주섬주섬 하면서
잠결에 자켓에 팔을 못 넣고 버둥대니까 그 남자가 옆에서 보고있다가 자켓을 입혀줬다.
학.. 순간 얼마나 당황했던지 잠이 홀딱 깨면서.. 고맙다고 했다.
남자는 자켓을 입혀준 후로도 계속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고,
뒤에서부터 내리려고 나오는 버스 승객들의 줄을 중간에 끊어서 내가 나갈 수 있게 해줬다.
고맙긴 하지만 왠지 부담스럽고 이상한 인간이면 어쩌지 싶은 생각에
애써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터미널로 들어갔다.
남자가 인사라도 하려는 듯이 쫒아오는데 열라 빠른 걸음으로 약속장소인 편의점으로 가서
태연이를 만났다. 왠지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태연이와 5번가 백화점에 가서 키엘 스킨과 MAC 립라커를 사고,
화장품 사러 온 멋진 오빠커플들을 구경하고, 옷 구경을 했는데 너무 비쌌다.
삭스피프스, 바니스 뉴욕 백화점을 보고 몇몇 브랜드 매장을 들어가 봤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사지는 못했다.
'사이공 그릴'에 가서 탕수 생선 튀김과 쌀국수를 먹었는데 싸고 굉장히 맛있었다.
사이공 그릴은 베트남 음식점이지만 중국인이 주인이란다.

태연이 일하는 바에 들렀더니 수진언니가 'H&M'에 물건이 많이 들어온 날이라
건질 것이 많을 거라며 가보라고 한다.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예쁘다 싶으면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사려던 옷들을 사지 못했던 우리는 와~~ 하고 당장 달려 나갔다.
9시에 문을 닫는데 나온 시각이 8시여서 쇼핑할 시간은 1시간 밖에 없었다.
그때 그때 유행에 맞는 저가의 옷을 살 수 있는 'H&M'은
왕창 사서 싸게싸게 입고 새로운 것을 사는 스타일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신나게 쇼핑을 하고 이따만한 쇼핑백을 들고 나오니 왠지 후련했다.
신난 우리는 내가 이럴려고 돈 벌었지 하고 둘이 낄낄거렸다.
바람이 쌩쌩 불어 추운 밤이었는데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담배를 피는 것도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거니까 하고 담배불을 붙이며 태연이랑 웃었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내 토끼 잘 있냐고 물으니 잘 있다고 대답하는 소리가 이상해서
오빠한테 다시 물어보니 엄마가 토요일마다 집 앞에 오는 토끼 장수한테 줬다고 한다.
그 아저씨가 안그래도 새끼 뺄 수놈이 필요했는데 참 예쁘다고 하면서 가져갔단다.
그동안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하는 걸 토끼값이 1만원인데 수술비가 8만원이어서 망설이며 못해줬는데,
짜식.. 결국 그 토끼장수네 종토로 가는 구나. 씨.. 너무 엄마가 미워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여행만 오면 이때다 하며 꼭 키우던 동물을 누구 줘버린다.
집에 가도 그리운 그 놈이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허전해서 눈물이 나왔다.
침대에 누워서 영숙씨~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여행 7

from 분류없음 2002/10/25 03:09

10월 25일
일하러 가야 하는 태연이가 몸이 안좋다고 쉬었다.
효진이도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결국 늦잠으로 수업을 빼먹고..
계속 식탁에 앉아서 셋이 몇시간 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효진이가 문을 보더니 으으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젠장 안그래도 아직 링의 그림자에서 못 벗어났는데 덩달아 놀래서 보니
그릭 집주인이 우뚝 서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듯 하이 하고 인사를 하고선
무슨 문제는 없는지 물어봤다. 사실 2주 전쯤 밤에 도둑이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창문에 알람도 설치할 겸 그 밖에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러 온 것이었다.
우리는 여자들이 쓰는 화장실 세면대가 막힌다는 얘기를 하고, 집주인 아저씨는
도둑이 들었을 때의 상황을 더 자세히 듣고 싶어했다.

도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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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들었던 날 저녁에 태연이는 방에서 자고 있었고, 효진이는 거실에서 숙제를 하고,
옴리도 자기 방에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숙제를 하고 있었다. (사실 옴리는 귀가 안좋아서
한쪽에 보청기를 끼는데, 그래서 옴리한테 말을 할 때는 조금 크게 얘기를 해야했다. 옴리랑 효진이랑
둘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저것들이 싸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효진이는 크게 얘기를 해준다.)
효진이가 숙제를 하다가 전화가 와서 태연이를 깨우러 방으로 가는 사이에
도둑은 여자 화장실 창문을 넘어와 문이 열린 태연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효진이가 태연이를 깨우러 방에 들어가서 '언니~'하고 불렀을 때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도둑이 화들짝 일어나
문앞에 있는 효진이를 밀치고 다시 화장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고,
자다가 갑자기 눈앞에서 검은 물체가 확 일어나는 걸 본 태연이가 소리를 지르고,
도둑에게 놀란 효진이가 역시 소리를 지르면서 저걸 잡아야 한다고 주위에 도둑을 때릴만한 물건을 찾았다.
태연이도 역시 무서워 하면서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효진이랑 둘이 우왕좌왕하며 방을 뒤지는데
효진이가 손에 잡히는 대로 안마기를 들고 나가려고 하길래 '너 도둑 안마해 줄 일 있냐' 하면서 정신을 차리게 했다.
둘이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로 갔고 그때서야 뭔가 눈치를 챈 옴리가 'WHAT~!!' 하면서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옴리의 방문은 열려있었지만, 그는 노래소리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숙제를 하고 있었다.)
효진이가 옴리에게 도둑이 들었다고 하자 집안에 하나뿐인 남자.. 옴리가 자기가 먼저 살펴보겠다고 화장실앞 벽에 붙어서
'Hey!..' 하고 부르며 고개를 내밀고 화장실 안을 보니 가니까 이미 도둑은 열린 창문으로 도망간 후였다.

셋이서 진정을 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니, 경찰들이 와서 집안을 살펴보고 사건 경위와 인상착의를 물었다.
그래서 효진이가 마른 체격에 옷은 불이 꺼져있어서 잘 못 보고 cap을 썼다고 말해줬다.
얼마후 경찰에서 용의자를 잡았으니, 와서 확인해 달라고 연락이 와서 갔더니
용의자들을 세워놓고 이쪽 편에서만 보이는 창 앞에서 확인을 하고 누군지 말해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용의자들을 보니, 왠 뚱뚱한 남자에서 흑인 백인.. 다양한 사람들을 붙잡아 놨단다.
효진이가 말랐다고 하지 않았냐. 그리고 cap을 썼다고 했는데 저 사람들 다 어떻게 잡은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찰이 cab이 아니고 cap이었냐면서.. 자기네는 택시타고 지나는 놈들은 다 잡아놨는데.. 라고 하더란다.
괜한 용의자들을 풀어주고 도둑은 못 잡았지만 그 이후로 태연이네는 문도 열지 않고 블라인드도 꼭꼭 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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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집주인에게 도둑이 들었던 얘기를 다 하고, 알람을 설치하러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맨하탄으로 나갈까 고민하다가 뉴저지에서도 유명한 이탈리안 식당이 있다길래
집 근처 tomato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굉장히 작은 집인데 사람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안에서는 마늘과 각종 이탈리안 향신료의 향이 가득하고, 먹는 사람들은 느긋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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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리스들과 손님들이 아주 잘 아는 친한 사이인 듯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고 안부인사를 한다.
우리차례가 되어서 먼저 제공되는 마늘빵을 실컷 먹고, 크림소스 파스타, 치킨요리와 시저 샐러드를 시켰다.
샐러드에 엔쵸비가 있어서 맛봤다. 멸치젓 같았다.

먹는 중에 주방에 있던 땅딸막한 아저씨가 앞치마를 두르고 나와서 손님들과 인사를 하다가 꼬마애들한테
마술을 보여주며 장난을 친다. 처음엔 고양이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손에 숨겨 놀리더니
종이 봉투 하나를 가져와서 오른손에 들고 왼속으로 공을 공중에 던지는 시늉을 하고 봉투를 든 오른손에
가지고 있던 공을 떨어뜨려 받은 것처럼 시늉을 하여 아이들의 입을 벌어지게 한다.
아무리 어렵게 던져도 다 받아내니 신기해하며.. 사람들도 보면서 재밌게 웃는다.
뒤쪽 테이블의 할아버지 손님이 접시를 바닥에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가 났다.
접시 소리가 나자 순간 가게 안이 온통 조용~~해졌다. 그때 직원들이 일제히 박수와 환호성을 지르며
장난을 치자 할아버지도 덜 미안해 하고 오히려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그 할아버지도 웃으면서 한번 더 해볼까 하며 농담을 하고 같이 앉아있던 할머니도 긴장했다가 좋아하며 활짝 웃는다.

맛있게 먹고 나와서 길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는데 어떤 아저씨가 지나가며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셀프사진을 찍는 걸 구경 하고 기분좋게 웃었다.
커피를 마시러 빵집에 갔다가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노래방에 가서 놀았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2시간 놀았는데 70불이나 나왔다.
나오니 비가 많이 오고 있었고 주차장으로 뛰어가니 차에 딱지가 붙어있었다.
shopper short time parking이란 것만 봤는데 24시간 코인을 넣어야 했던 주차장이었다.
옆에 차안에 있던 흑인 여경찰에게 물으니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딱딱하고 쌀쌀맞게 얘기한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정말 재밌게 마감할 수 있는 하루였는데...

여행 6

from 분류없음 2002/10/24 03:09

10월 24일
지하철을 타고 81가에 내려 바로 연결되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센트럴 파크와 바로 접해있는 자연사 박물관은 "1869년에 설립된 이래, 인류 문화와 자연 및 우주에
관한 정보를 탐색하고 해석, 전파하는 사명을 추진해 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과 같은 책을 보면
이 자연사 박물관에 대해 꺼림직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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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하퍼의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원제 ‘Give Me My Father's Body’)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보조큐레이터 프란츠 보아스의 인종 표본 연구 요청에 따라 1896년 피어리는 에스키모 여섯 명을 뉴욕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전시하여 미국인들에게 인기있는 놀이갯감으로 만들어 입장료를 챙기고,
새로운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 에스키모인들은 2년 사이에 네명이 죽어갑니다. (북극에는 감기 바이러스가 없다고 합니다.)

남은 두명 중 한명은 북극으로 돌아가고, 부모도 없이 혼자 남은 미닉이라는 소년은 건물 관리인에게 입양되어 미국에서 키워집니다.
(물론 에스키모의 말은 모두 잃어버리고.)
뒤틀린 야심으로 네명의 생명을 앗은 미국 당국의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닉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짜로 아버지 키수크의 장례를 치른 후 그 유해를 빼돌려
자연사 박물관에 공룡이나 원숭이뼈와 나란히 전시해놓은 것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의 몸이 다 발라져 구경꾼들 가운데 유골로 전시되어 있는 장면..
진실을 안 미닉은 큰 충격에 휩싸이고 “아빠를 돌려달라”며 유골을 돌려받기 위해 싸웁니다.
1907 년 소년의 소식이 신문에 소개되어 이 사건은 미국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미국정부는 에스키모 유골을 전시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며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자연사'에는 유러피언의 역사를 제외한 모든 현상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고로 백인 유러피안만이 인류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연인 셈이지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말도 뿌리도 잃어버린 이방인.
28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미닉은 그린란드와 뉴욕을 오가면 방황해야 했으며 끝내 아버지의 유골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많은 미닉 아버지의 유골은 그가 죽고 난 뒤 80여년이 지나서야 자연사박물관을 떠나 그린란드에 안착되었답니다.
자신의 북극점 정복을 사심없이 도와준 순수한 에스키모들을 철저하게 이용했고 능욕한 피어리에 속아 미국땅을 밟은지 96년만에..

'에스키모'는 '생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뜻이므로, 그들의 비운에 공감한다면 그들을 부르는 명칭을
이눅티투트어로 '사람'을 뜻하는 '이누이트'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당부가 있었답니다.

* 저자 : 켄 하퍼

1945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출생. 1966년 결혼 후 태나다 노스웨스트 테이토리
에스키모 거주 지역 누나부트에서 교사 생활 시작. 이주 직후 백인 아내와 이혼.
캐나다 정부의 영어전용적책에 의문을 갖고 에스키모 언어인 이눅티투트를 배움.
에스키모들로부터 '일리사이지쿠타그', 즉 '키다리 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음.
1974년 교직 은퇴 후 북극 망에 서점 개업. 에스키모 문화에 대한 집필활동 시작.
1977년 북극의 '땅끝마을Thule'인 그린란드 카나크에서 에스키모 여인과 결혼.
현재 에스키모 사회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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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박제된 동물이나 세계 각지의 유물이 들어차 있는 전시실을 돌아보니.. 좀 지루했다.
공룡파트를 지나다 보니 작은 스크린으로 공룡 진화에 대한 영상물을 틀어주고 있었다.
컴컴한 곳 한쪽에 앉아서 보는데 종별 진화 도표를 보며 차례 차례 설명을 하다가 다 끝나니
도표가 분해되며 자연스럽게 그 층의 평면도로 바뀌면서 이 종들에 대한 더 자세한 것은
바로 이 층에서 볼 수 있다는 안내 멘트로 끝나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전시물을 둘러싼 유리에는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중요한 질문들이 쓰여있었는데,
예를 들면 공룡뼈가 전시된 유리에는 '공룡의 뇌는 정말 두개였을까?'란 질문이 있고
그 아래에 코끼리를 비교하여 쓴 답이 적혀있었다.


아마존 전시관에 올라가니 원주민의 영상물을 틀어주고 있었는데 숲을 누비며 독침으로
원숭이를 사냥하는 부자에 대한 얘기였다.
또 책에서만 보던 원주민들이 전리품으로 적의 머리가죽을 벗겨 찌고 건조시켜 만든
장식품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엔 시커멓고 치렁치렁 긴 머리카락을 단 조그만 머리가
공중에 달려있어서 원숭이의 머리인가 했는데.. 가만히 보니 밑에 단계별로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둔.. 죽은 사람의 머리로 만든 장식품이었다. 세개 정도 전시되어있었는데 흥미로웠다.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도 많았고 숙제를 하러 찾은 학생들도 많았다.
사춘기의 남자 아이를 아버지가 데리고 설명을 해주며 같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장애인들도 전동차 타고 자유롭게 다니고..

다 돌아보고 나와서 외관을 보니 고풍스러웠다. 마당의 울창한 나무들 속에서 새들이 지저귄다.
지하철을 타야하는데 괜히 센트럴파크를 따라 걸었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공기도 차고 상쾌했다.

이 곳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나 여러 박물관을 찾아서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다. 그걸 충분히 활용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배우는 애들이야 좋겠지만,
세계 각지의 온갖 유물들을 그렇게 모아둔 것이 어째 힘있는 나라의 횡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박물관과 연결된 도서관으로 들어가던 한 배낭 맨 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47명의 큐레이터와 200명의 연구 과학자, 70명의 박사와 대학원생, 3200만 종의 표본과 인공물,
2개의 하이테크 분자 실험실, 매년 100회의 전세계 모든 지역에 대한 조사 여행, 전세계적인 연구,정책,
교육에 전념하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생물 보존 센터, 서반구 대규모 자연사 도서관..
그들이 정녕 올바른 가치관으로 의미있는 연구를 하고 세계와 공유하게 되길..

여행 5

from 분류없음 2002/10/23 03:09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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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수진언니와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태연이도 아파서 학교 못가고
효진이도 쉬는 날이어서 취소하고 집에 있었다.
아침먹고 간식먹고 야인시대 보고 놀다가 양파 튀김에 땅콩버터 죽을 만들어 줬더니
'으아~ 윤화진 우렁각시다!'
라고 했다...
고추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사와서 쫄면 해먹고 인어아가씨 보고 오빠한테 전화하고
리멤버 보고 오징어 먹고 소주 한잔 하고 계획표 짜고 잤다.
태연이 방에 아주 큰 TV가 있는데, 시커먼 화면을 볼 때마다 흠칫흠칫 놀랜다.
미치겠다. 링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꽤 크다.

게다가 이 집에 그리스 선원 아저씨가 지은 집인데, 인테리어 취향이 꽤 특이해서
거실과 복도에 모두 어두운 거울이 새로로 쫙 붙어있는.. 인테리어다.
또 얼마 전에 도둑이 들어서 애들이 문도 다 닫고 블라인드도 다 내려놓고 살아서 좀 어두우니..
음침하고 기괴한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좀 있다.
그래서 더더욱 무서워서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저쪽 주택가로 돌아가다 보니, 동네 야구장이 있는데 밤에도 조명시설이 잘되어있어서
몇몇 가족들끼리 아들과 야구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아빠와 야구를 하는 어린 아들..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도둑 이야기와 룸메이트 옴리에 대한 이야기, 또 효진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로 하겠다.

Comments (2)

권석찬:

이 사진들 디지털인가요? 아님 35mm 인가요?
꼭 알려주심 고맙겠고요 당신의 글 솜씨와 사진 솜씨가 예사가 아니군요.
부럽고 있어요.

뉴욕가서 찍은 사진들은 모두 캐논 G2로 찍은 거예요.
칭찬해 주시니 감사~
거의 기록해야 한다는 일념에만 충실한 사진들인 걸요.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

여행 4

from 분류없음 2002/10/22 03:09

10월 22일
느즈막히 맨하탄에 나가서 Tad's steak에서 스테이크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70년대부터인가.. 아무튼 굉장히 오래된 집인데 체인점이 여기저기 꽤 있었다.
가격도 저렴한데 두툼한 스테이크와 야채 샐러드를 곁들여 정말 배부르다.
주로 멕시칸들이 운영하는 가게인 듯 하다.
수업이 있는 태연이와 헤어져 저녁에 다시 만나서 집에 가기로 하고
혼자 Loews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결정..

나는 지하철역에 포스터가 많이 붙어있던 8-mile을 하면 보려고 했더니
아직 개봉 전이고,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막상 극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없었다.
한국처럼 매표소 앞에 팜플렛이 있다거나, 따로 화면을 설치해서 예고편을 보여주는 게 전혀 없어서
단지 영화 제목들을 보고 골라야 할 판이었다.
음.. 왠지 심플한 제목. 한 컷짜리 영화 스틸 사진이 있었는데 느낌이 괜찮은거 같아서 그걸로 결정했다.
분위기는 공포영화 같은데, 뭐.. 무서워봤자 엑소시스트만 하겠어 하고 들어갔다.
1층에 매표소와 로비가 있고, 표를 사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여러개의 상영관이 주루룩 있는데
loews의 시스템을 따온 메가박스와 분위기까지 똑같다.
근데 지키는 직원이 한명 뿐이라서 상영관이 있는 복도 앞에서 표를 끊고 나면 자기가 표를 끊었어도
아무 영화라도 볼 수 있을 거 같고, 왠지 한편 보고 또 한편 봐도 모를 분위기였다. ^.^+

암튼, 일찌감치 들어가니 광고를 하고 있었다. 광고가 기발하면서도 재밌는 것들이 많았는데
한 직장인 남자의 셔츠와 타이 색깔만 변할 뿐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을
비틀즈 음악을 배경으로 컷 분할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주면서 마지막에 쳇바퀴 돌듯 살아가던 그 무표정한 남자가
창밖을 보면서 동경과 환희에 차서 씨익 웃음 짓는 것으로 끝나는 뉴비틀 선전이 인상깊었는데 뉴비틀 차꽁무니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입을 반쯤 벌린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화면으로 시작되는 광고가 있는데
그 남자가 너무너무 심심해서 정신이 나간 상태인데, 조그만 흡입호스를 가지고 아주 천천히 자기 얼굴에 뗐다 붙였다 하면서
무료함을 이겨보려는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그 어이없음에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광고가 있었는데
결국 그게 무슨 선전이었는지는 까먹었지만, 아무튼 넋이 나갈정도로 권태로운 일상에 정신이 확 드는 재미를 준다는 어떤 것에 대한 광고였다.
이어서 예고편을 보는데, 8-mile은 예고편까지 보니 ...정말 보고싶었다.

그리고 디카프리오와 탐 행크스, 그리고 스필버그가 만난 영화 'Catch Me If You Can'은
예고편만으로 정말 흥미진진한 재미를 느끼게 했다.

영화가 시작됐는데, 처음에는 ...스크림같은 분위기로.. 여고생 두명이 방에서 잡담을 하다가 무서운 얘기를 하는 것.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 알게됐다. 내가 보는 영화가 미국판 '링'이라는 것을..
젠장! 왜 The Ring 이라고 똑똑히 써있는데, 이 링이 그 링이란 것을 까맣게 몰랐던 걸까!
순간 숨막히는 후회 속에.. 일본판 링도 보지 않은 나로서는.. 미국 링이 얼마나 무섭겠어. 돈 아깝네.
아.. 다 아는 얘기를 다시 봐야 하다니.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생각은.. 첫 희생자의 특수분장을 보는 순간 싸그리 사라졌다.
....정말 무섭다. 난 혼자 앉아서 그 영화 보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던 것이 3번을 됐을 것이다.
젠장, 미국애들이 더럽게 무섭게 만들어놨다.
원래 일본판에는 그 죽은 아이가 양성이었던 사연이 있다는 걸로 아는데,
미국판 링에는 정말 미국적인 비극의 가족사가 얽혀서.. 말농장을 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들어갔다.
바다. 등대. 말. 거울. 사다리. 의자. 절벽에서 떨어지는 여인. 파리 등등의 이미지가 나오는데,
잠들지 못하는 소녀가 바로 그 소녀이고.. 동양적인 이미지가.. 왠지 서부 개척시대의 그런 분위기가 나면서
충분히 무섭게 적용되었다. 또 동양것과 비교해서 서양의 문화와 관객 취향에 잘 맞춰서 각색한 것 같은데
나중에 두 개를 다 본다면 비교가 잘 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워서 그럴 일은 없을것 같다.

여행 3

from 분류없음 2002/10/21 03:09

10월 21일
월요일 아침.
태연이네 학교 School of Visual Art에 같이 갔다가 Wall st의 금융회사에 다니는 고등학교 선배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맨하탄으로 나가는 길이 너무 많이 막혀서 늦어버렸다.
8에브뉴에 40st와 42st에 걸쳐 위치한 Port Authority Bus Terminal(뉴저지와 맨하탄을 오가느라 아주 많이 드나들었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갔다. 뉴욕의 지하철역들은 100년 정도 됐다고 하는데, 바닥에는 엄청난 껌자국 들이 시커멓게 들러붙어있고
(내리막길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껌자국도 경사를 따라 밀려나있다), 환기도 잘 되지 않는데다 온기를 찾아 모여든 홈리스들
덕에 냄새도 난다. 여름에는 더운 열기가 가득한데다 홈리스들이 갈긴 오줌 냄새까지 올라와서 거의 정신이 혼미하다고 한다.

거미줄처럼 얽힌 천정 낮은 오래된 지하도로는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아주 붐비고 있었다.
N이나 R노선을 타는 플랫폼에 도착하니 색스폰 소리가 들렸다.
걸어가면서 가만히 들어보니 끈적거리는 블루스나 재즈도 아닌.. 바흐였다.
사람들을 많이 지나 소리의 정체를 만나니 형형색깔의 옷을 레이어드룩으로 입은 안경을 낀 흑인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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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걸음을 치며 일터로 가기 위해 플랫폼 위에 서 있는 뉴요커들 위로, 도시의 회색 지하 동굴 안에 그녀의 바흐가 울려퍼진다.
이후에도 종종 오전 시간에 타임스퀘어 역에서 N,R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그녀의 색스폰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홈리스 같아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엘리트 음대생같아 보였다. 볼 때마다 그녀의 칼라풀하면서도 의젓한 패션에
호감이 갔는데, 흰색 셔츠와 분홍색 니트, 그리고 흰색 털모자에 밝은 뿔테를 코에 걸치고 색스폰을 불던 날은 정말 예뻐보였다.

왠지 시공에 혼란이 오는 비현실적인 감상에 빠져있다가 지하철이 오자마자 바쁘게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 올라탔다.

유니언 스퀘어에서 내리니 간단히 아침 장이 선것 같았다. 라틴계 장사꾼이 신선한 야채와 과일 빵을 파는 수레를 지나
어차피 늦은 거 화장실도 가고 커피나 마실까 하고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흘.. 마침 화장실이 고장 났다기에 옆에 맥도널드로 들어갔다.
덩치큰 흑인 남자들이 좁디좁은 맥도날드 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다리를 내밀고 있어서 지나가기가 어려웠다.
혼자, 또는 둘씩 햄버거를 헤치운 흑인들은 아침부터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나른하고도 매서운 눈빛으로 맥도널드로 뛰어 들어온 동양 여자애 둘을 흘끗 보았다.
그곳에서 커피를 즐기기란 어려울 거 같아서 그냥 학교로 갔다.

SVA는 14st, 1av에서 3av사이에 몇개의 건물에 흩어져 있다.
맨하탄 대부분의 학교는 도로변 건물에 있는데 여러 건물을 사용할 경우, 수업시간에 맞춰 강의실을 옮겨다니느라
거리를 부지런히 쫒아다녀야 한다. 쉬는 시간 동안 몇 에브뉴 떨어진 강의실로 이동하려면 가는 중에 핫도그 사서 뛰어가며
끼니를 때우고 다음 수업에 도착해야 한단다.
그러니 당연히 멋진 교정은 바랄 수도 없는데, NYU는 앞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캠퍼스 삼아 이용하고 주위에
많은 건물을 NYU로 만들어서 NYU 거리 분위기가 물씬 난다.
SVA 옛날식 계단을 올라가서 오밀조밀있는 컴퓨터실 중에 한 곳으로 들어가 괜히 친구따라 illustration 10 강의를 들었다.

12시에 다시 42st으로 가서 유진오빠를 만났다.
오빠와 함께 SOHO로 갔는데, 월요일 점심이라 사람들도 없이 무척 한산했다.
각종 재밌고 아이디어 넘치는 발랄한 칼라의 생활소품가게도 구경하고, 정원용품 가게, 옷가게도 보고, 미술품 가게도 보고
오빠의 단골이라는 멕시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있었다.. 흐...
애플 컴퓨터 매장은 정말 미래적인 인테리어와 디자인이 돋보이는 멋진 공간이었다.
천창이 있었는지 전체적으로 무척 밝고 투명과 흰색, 메탈이 조화를 이루었는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듯한 투명판에 LCD 모니터가 박힌 컴퓨터들과 기발한 모양의 스피커들에 감탄 안할 수 없었다.
2층은 중앙 부분이 1층과 트여있고 중간을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연결되어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컴퓨터와 탁자와 푹신한 동그란 의자가 아주 앙증맞았다.

좀 돌아다니다가 SAKS FIFTH 백화점과 유태인들이 많은 다이아몬드 거리를 구경했다.
티파니 매장에 갔는데 엄마와 쇼핑 온 일본 여자애들이 자주 보였다.
5층인지 6층인지까지 있는데 층마다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와 보석류, 준보석류 등으로 분류되어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개나 소나 다 하고다니는' 실버 체인 목걸이와 팔찌를 구경하고 내려왔다.
오빠가 저렴하다며 보여준 그 은체인은 한 25만원정도 했던 거 같다.
선배는 실버 머니클립을 샀는데 색이 변해서 와서 무척 비싼 가격에 세척까지 했었다고 한다.
색이 변한다고 불평을 하자 순은이니까 변한다며 자주 와서 세척을 하면 된다고 했단다.
그래도 진정한 미국 부자는 머니클립을 쓴다는 것에 마음을 가라앉혀야지...

CompUSA에 매장에서 노트북을 구경하고, 성 패트릭 성당에 들어가 잠시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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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혹시 나홀로 집에 나온 그 성당이던가?
성당은 멋졌지만,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소란스러웠다.

오빠와 헤어져 파슨스 앞에서 효진이를 만나서 집에 왔다.
터미널 앞에서 한 흑인 남자와 멕시칸 남자가 마주보며 웃고있었다.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길래 왜 저러나 하고 보니
서로 옷을 벗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흑인 남자가 주먹으로 멕시칸 남자의 얼굴을 빡-! 하고 때렸다.
덩치가 왜소한 멕시칸 남자가 그 한대를 맞고는 슬금슬금 도망을 가서 싸움은 시시하게 끝나고 말았다.
어떤 이는 생전처음 해외여행이라고 미국에 왔는데 공항 내려 나오자 마자 바로 앞 도로에서 목격한 것이
경찰과의 범인과의 총격전이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쫄아있었을 땐데..
아무튼 너무 빨빨거리고 많이 돌아다닌 하루였다.

여행 2

from 분류없음 2002/10/20 03:09

10월 20일
일요일 2시에 태연이랑 같이 일하는 수진 언니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보기로 했다.
고갱전시회를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음에 오기로 하고, 모던아트, 르네상스, 인상파 쪽을 봤다.
입장료는 도네이션이라 1달러만 냈다.
5번가에 프리마켓이 섰다고 해서 배도 고프고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있을까 해서 버스에서 내려 뛰어갔다.
값싸고 먹을만한 인도와 타이 음식을 사서 돌아다니며 먹었다.
모두 1달러짜리가 많고, 멕시칸 닭꼬치 같은것은 3달러..
돌아오는 길에 타임 스퀘어를 지나 Toy'sRus 장난감 가게를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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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가게 안에 애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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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로 자유의 여신상과 빌딩을 올라가는 킹콩을 만들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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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인형 전용관이 있어서, 인형에서 여자애들 옷까지 팔고 고가의 바비인형 전시도 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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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온갖 화장품 브랜드가 모여있는 세포라에 가서 이것저것 발라보고 나왔다. ^_____^

집에 와서 효진이 차로 한아름 마켓에서 장을 봤다.
그리고 태연이랑 밤새 얘기 하다가 잠들었다.

여행 1

from 분류없음 2002/10/19 03:09

10월 19일 오전 11시 20분

나리타행.
인사를 하고 나올 때 마음이 무거웠다.
조금 떨어져 있게 될 뿐인데..
옆에는 일본으로 밀월 여행을 떠나는 듯한
중년의 사업가 아저씨와 한껏 치장한 중년의 아줌마가
손을 꼭 붙잡고 놓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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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33분-
일본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조용하고 질서를 잘 지킨다구?
아이는 아이다!
나리타 공항에서 환승하러 이동하는 전동차 안에서 까까머리 남자애가
비행기를 가리키며 소리지르고 난리가 났다.
내려서 걸어갈 때는 '이끼마쭈! 이끼마쭈!' 폴짝 폴짝 뛰기까지 한다.
(분명 어리광 부리느라 '쭈' 같이 발음 했던거 같다.)

일본 공항 화장실에는 핸드 드라이어가 세면기 바로 옆에 달려있어서
바람이 위쪽으로 나왔다. 행여 렌즈 마를까 피해가며 손을 말렸다.
옆에는 일본 여승무원이 화장을 고치며 기름 종이를 아예 이마에 붙이고 있었다.
어딜가나 튀김은 있더라.

콘티넨탈 항공사의 승무원들은 거의 할머니.
껌을 씹으며 주머니에 손도 넣고 다니는데.. 더욱 자연스럽다.
야리야리한 몸매에 꽃같이 단장한 아시아 항공사의 언니들과는 비교가 된다.
그럴 필요 없는데... 아까울 뿐.
감기가 들었는데 비행기가 춥다.
승무원에게 혹시 감기약 있는지 물으니 약은 없단다.
콧물이 줄줄..온몸이 쑤시더라.

뉴왁까지 갈 때는 가운데 줄에 앉았는데
가운데 자리는 비고, 일본 여자에가 반대편에 앉았다.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는지 일본어로 말을 걸어온다.
일본애들은 영어 한마디 못해도 세계 돌아다닐 때 불편이 없다. 아니 한국 사람보다는 덜 하다.
이 비행기만 해도 일본인 승무원이 두명 타서 일본어, 영어를 다 해주니..
내가 콧물나서 승무원한테 티슈 갖다 달라고 했는데 자꾸 안갖다주니까
일본 여자애가 화장실 갔다오면서 대신 갖다줬다.
얘기를 계속 했으면 좋았겠지만, 난 계속 코 푸느라...

뉴왁공항 도착해서 효진이 차를 타고 팔리세이즈파크 태연이네로 왔다.
사택이 생각나는 야트막한 주택가, 집마다 개성이 넘친다.
할로윈이 가까워서 인형들, 호박들로 치장한 집도 있고..
9.11 이후로는 GOD BLESS AMERICA 라는 문구를 차에나 가게에 많이 붙이고 있었고.
성조기를 집에 걸어두거나 대문에, 창문에, 차에 깃발로 꽂는 애들도 많았다.
7시 반쯤 뉴욕시내로 나가 감미옥에서 설렁탕을 먹고
친구가 바텐더로 아르바이트하는 스탠포드 호텔 2층의 맥심바에서
태연이랑 같이 일하는 언니와 인사하고 매니저와도 인사했다.
재즈 연주가 있었고, 작지만 단골 위주의 분위기가 좋은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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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from 분류없음 2002/10/18 03:09

내일 오전 11시 출국.
3일동안 후다닥 준비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이게 나의 일상이야 하고 당연시 하던 것들에서
좀 거리를 두고.. 낯선 공간 속에서 생각을 해보자.
여행이란게 떠나서 새로 속한 공간에 대한 감상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 그리고 두고온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거 아닐까.

조금 더 용감하고 자유로운 내가 되서 오길.
두근두근.
블로그 대신 아주 작은 스케치북을 꼭 쥐고 갈겁니다.

아니타 로딕의『영적인 비즈니스』중간 중간에 만나게 되는 말들을 메모한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익을 내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 경우에도 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

'공동체(community)라는 말은 공유(communion)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공유라는 것은 공동의 과제를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공동의 과제를 함께 나눌 때다.
그때 정말 찬미할 만한 일이 생긴다. - 매튜 폭스'

'기업의 리더들이 당면한 과제는, 인생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을 하찮거나 우울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그들의 문화를 위해 정신적인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짐 채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세상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커지는 것 같다.
나는 눈덩이와 같다. 더 멀리 굴러갈 수록, 그만큼 더 커진다. -수잔 B. 앤터니'

'한 명의 노예가 있는 곳에는 항상 한 명의 노예가 더 있다.
쇠사슬을 차고 있는 노예와 그 쇠사슬을 채운 노예가 그들이다. -잔 드 헤리코트'

'책임 의식을 가진 인정 많은 시민들로 구성된 작은 집단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마라.
실제로 지금까지 세상을 변화시켜왔던 유일한 힘은 바로 그런 집단이다. -마거릿 미드'

'모든 지식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완벽함을 겨냥할 때, 완벽함은 움직이는 목표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조지 피셔'

'우리 사회에서 돌파구적인 변화를 책임지는 진정한 창의성은 언제나 규칙을 위반한다. -리처드 파슨'

꿈, 비둘기

from 분류없음 2002/10/14 03:03

지난 추석, 꿈에 고등학교 동창 남자애가 나왔었다.
우리 아파트 앞에서 그 친구와 만났는데, 울고 있었다.
내가 왜 우냐고 물어봐도 속 시원히 얘기하지 않고 서럽게 울었다.
꿈을 깨고 이상한 생각에 그날 저녁에 통화를 했었는데
'글쎄.. 내가 울었다고? 별 일 없는데.' 하며 안부나 나눴다.
한달이 지나 선배의 결혼식에서 만난 그 동창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추석 마지막 날의 싸움이 화근이 되었다고.
아마 1년쯤에 찾아오는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했던가..
술로 아픔을 잊어볼까 하여 생전 처음 필름도 끊겨보고 했다며..
참, 기분이 이상하다.

토요일 낮, 약속이 있어 급히 뛰어가다가 아파트 주차장에 비둘기가 죽어있는 걸 봤다.
통통한 배를 보이며, 두 다리를 하늘로 쭉 뻗고 날개가 찢어진 채 죽어있었다.
분명 자동차 바퀴에 치어 죽은 듯 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사는 동안 지저분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사람들 눈총받으며 미움받으며, 그래도 끈질기게 살았던 생명.
'비둘기는 하늘의 쥐'라는 앨범 제목까지 있고..
하긴 비둘기 일생에 사람들의 마음이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비둘기에겐 비둘기들의 세계가 있으니, 덜 위험한 동물이거나 때론 천적이거나 했겠지.
그래도 도시에 사는 모든 동물에겐 미안한 마음이다.
존중해주질 못해서... 다 사람들 잘못이지.

스물여섯의 여자친구들이 결혼한 동창집에 모였다.
오랜시간 연애도 하고, 남자친구도 있는 여자들이 다시 혼란스러워 한다.
스무살 대학 신입생때의 같은 고민을, 그때는 '아~ 이제 알겠다!'라고 했던 고민이
경험과 세월.. 그 후에 다시 다른 양상을 띄며 부상한 것이다.
과연 사랑이 뭐냐...

죽고 못살던 그 남자애, 늘 붙어다니고 집안끼리 알고 지낸지도 벌써 몇 해 째인데
이제 다시 고민이 된다는 거지.
난 얘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애.
그럼 예전에는 사랑했었던 거 같애?
그 기억도 가물가물해. 과연 그랬던 건지. 그냥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았던 건 생각나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럼?
걔랑은 결혼 못할거 같애. 안하고 싶어.

리얼버전 처녀들의 저녁식사라도 된양,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나두.. 나라면..
그의 현실이 나의 현실이 되는 게 두렵고,
난 이대로가 좋은데, 피곤하기 싫은데..
떨쳐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속으로만 파고드는 아침처럼
조금 더 부비적대고 싶은지도.

출구가 어디일까.
출구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발길 닿는 곳, 해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고민들.
이 길이 맞는 줄 알았는데 문득 잘못 들어선 듯 하고...
진을 빼는 고민들은 아주 조금만 하고 생산적인 것에 심신을 쓰며
건강하게 마구 내달리고 싶을 뿐이다.

Expiration Date: 2012

from 분류없음 2002/10/09 03:02

비자에 expiration date가 2012년이라고 찍혀있으니 되게 이상하다.
비현실 적인 날짜 같아서.
2012년이 과연 올까? 하는 느낌이..
하긴,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2001년이 배경이었으니..
지금은 2002년이지만 아직 전염병 소문이 돌지 않고 있잖아.
우주공간 높이 솟구친 뼈다귀 장면이 떠오른다.
하늘에서 부시맨에게 떨어지는 콜라병 생각도 나고,
카소비츠의 la haine에서 지구위로 던져지는 화염병 장면도 떠오른다.
무언가를 냅다 던지는 행위는 정말 통쾌하다.
http://www.primat.se/primat/apelogic.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