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라디오를 일부러 찾아 듣는 일이 없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차 안에서 교통방송을 듣거나, (최양락 아저씨의 프로를 틀어놓는 운전기사를 만나면 방긋 웃어주고 싶었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는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를 들으며 우울하게 가야했다.. 그래도 모닥불을 들으며 출근했던 날보다는 나았다. 뒤에서 따라부르는 아줌마도 없고..)
가끔 주말에 친구와 양수리로 드라이브 가는 길에 두시의 데이트를 신나게 들었던 시간들을 빼고는..
거의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전에 라디오를 듣곤 했는데.
좋아하는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주파수도 맞추고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양
소중하게 귀 기울여 들었었다.
그때 언니랑 같은 침대에서 자야 했는데, 언니가 시끄럽다고 해서 정말 정말 소리를 조그맣게 낮추고 이불 속에서 듣기도 하고 그랬다. (나쁜 -.-+)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나, 좋은 얘기를 듣게 되면 안 잊어버리고 새겨두려고 애쓰고.
중학교 때는 독서실을 다니면서, 더욱 라디오에 빠졌던 것 같다.
어른들은 라디오나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나무라며, 그런거 들으면서 어떻게 공부가 되냐고 하는데 정말 맞다.
그거 들으면서 공부 안된다.
한 9초간 책에 집중하다가 어느 새 들려오는 음악이나 얘기 속에 넋을 잃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가끔 웃긴 얘기가 나오면 독서실 여기 저기에서 동시에 풉-, 피식- 하는 웃음 터지는 소리나..
정말 정말 웃긴 얘기가 나오면 웃음을 참느라 다들 꺽꺽 거린다.
나는 이선영의 영화 음악실이나, 전영혁을 좋아했다.
내가 이선영의 영화 음악실이 그 이후 진행자들의 것보다 좋았다고 하니.. 그 아줌마 목소리가 꽤나 느끼한데 취향 참 독특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좀 있다.
난 지적이면서도 감성이 풍부한 그 목소리 좋던데. 그리고 이선영이 영화 줄거리를 얘기하면 얼마나 실감이 났는데...
전영혁의 프로는 희귀한 음악이나 새로운 노래들, 또 가끔은 견디기 힘든 음악으로 날 시험하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소개해준 많은 아티스트들이 조금씩 조금씩 나의 문화적 취향과 영역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없어졌을 때 전영혁 마저 없애면 이제 그런 음악은 어디에서 들으란 말인가 하고 통탄했는데, 부활해서 다행이다.
대학 가서는 김장훈의 우리들을 많이 들었다.
김장훈이 그 프로를 하면서 정말 웃기고, 팬도 많이 확보하면서 뜨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뜨기 전에.. 라디오에서 진솔하게 자기 얘기도 하고, 어려웠던 시절 얘기도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던 순수 청년 김장훈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주 오랜만에 집에서 작업을 하며, 라디오를 들었다.
때려주고 싶은 진행자들도 많았지만, 마지막에 전영혁으로 마무리해서 알찬 시간이 되었다.
다른 세계로부터 오는 전파.. 가끔 라디오로 돌아가고 싶다.
Comments (1)
마져...이선영 아줌니 지금 뭐하시나 몰라. 말끝의 억양을 그리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지.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블로그가 HAM과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 (얼마전에 봤더니 누가 글 중에 써놨더만.) 조각조각의 얘기들을 넓은 공간으로 날려 보내는 면에서 말야. (입만 열었다하면 블로그 얘기군... -_-;)
Posted by hochan | June 26, 2003 4:11 AM